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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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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완화의료제도의 정착을 소망하며

등록일자
2005-11-07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

초승달은 오른쪽으로 불룩할까요, 왼쪽으로 불룩할까요?


달이 오른쪽부터 차오르는 현상은 초등학교 자연시험 때 한번 틀린 이후로는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불변의 진리였습니다. 그걸 의심한다는 것은 ‘난 우리 아버지 아들이 아니다’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경스러운 일이었죠. 그러나 작년에는 추석을 기다리며 하늘에 떠있는 반달을 보다가 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막 물오르는 상현달이 아니고 하현달이 넌 애비 없는 자식이구나 하면서 조롱하듯이 절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차 내가 달력을 잘못 봤구나, 추석이 벌써 지나갔나보다 하고 확인해보니 추석은 분명히 아직 일주일 정도 남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여차저차 알량한 지구과학 지식을 총동원해 여기가 호주이고 지구의 남반부이기 때문에 달이 왼쪽부터 차오르게 된다는 사실을 추론해내는 데에는 밥 잔뜩 먹고 소화가 다 되어야 할 만큼 오래 걸렸습니다.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겠지만 외국에 나오면 반대로 된 것이 참 많지요. 이를테면 시드니의 어느 횡단보도 바닥에는 ‘Look Right’라고 씌어 있는데 아마도 도로 오른쪽으로 차가 다니는 대한민국에서 온 사람들이 길을 건너다 다치지 않도록 길 건널 때는 오른 쪽을 먼저 보게 하는 거겠지요.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바로 보라는 말도 되겠지요? 때로는 이렇게 반대로 보지 않으면 사물이나 이치를 결코 올바로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그렇다고 우리 아이가 현지 학교에서 호주지도를 그려온 것을 보면 호주가 남반부라고 해서 남쪽을 위로 그리도록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작년 이맘때 호주 Adelaide의 Flinders 대학에서 호스피스 및 완화의료와 림프부종 연수를 위해 1년 4개월 정도 있었다는 말을 빠트렸군요. 호주가 워낙 큰 나라라 장님이 코끼리를 만질 때마다 다르게 말하는 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호주를 하늘이 넓고 푸른 나라, 비가 온 뒤 무지개가 아름다운 나라로 기억합니다(7번이나 잘못 나온 전화요금 때문에 전화로 하는 전투 영어가 늘 수밖에 없었던 것은 벌써 다 잊어버렸습니다). 무지개도 무지개이지만, 호주는 완화의료라는 아름다운 의료제도가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나라였습니다. 저는 한시적 면허를 취득하여 연수기간의 반 이상을 Daw House Hospice에서 전공의(registrar)로서 환자를 진료하며 임상경험을 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다수의 환자분들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유머를 즐기고, 의료진을 격려하며, 감사하면서 삶의 질을 누리시는 것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웃음이 절정의 삶, 밝은 세상을 나타내고 있다면 죽음은 우리 사회에서 보통 어둡고 칙칙한 패배와 배신감과 같이 삶의 정반대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지 궁금하였습니다. 물론 문화적으로 이 나라 사람들의 유머 감각이 뛰어난 탓도 있겠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설명이 잘 안되었지요. 그러나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의사, 간호사, 사회사업가, 자원봉사자, 목회자들을 보게 된 것이지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은 환자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고, 이마에 입을 맞추면서 그들의 편안함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광대의사(clown doctor)로 분장하여 환자와 가족을 한바탕 웃음으로 위로하여 주는 분도 있었습니다. 호스피스는 환자들의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선택을 존중하여 증상 완화를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임종에 이르기까지 삶을 멋지게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완성이기 때문이지요.

 

올 추석은 이미 지나고 벌써 다음 보름달이 뜰 때가 오고 있네요. 우리 달은 호주와는 달리 왼쪽으로 배가 불러가지만, 그래도 어두울수록 더욱 환히 빛나는 달을 보며, 우리나라에서도 아름다운 마지막 삶을 위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제도가 빨리 정착되기를 소망하며, 노력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글_심재용(강남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완화의료 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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